한국의 역사 속에서 장미를 찾아보면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언급되었는데, 이를 보아 한국에 처음 장미가 등장한 것은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삼국사기》 제 46권 열전6 설총 조를 보면 <신이 들으니 예전에 화왕(花王, 모란)이 처음 들어 왔을 때, 향기로운 꽃동산에 심고 푸른 장막으로 보호하였는데, 봄이 되어 곱게 피어나 온갖 꽃들을 능가하여 홀로 뛰어났습니다. 이에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곱고 어여쁜 꽃들이 빠짐없이 달려와서 혹시 시간이 늦지나 않을까 그것만 걱정하며 배알하려고 하였습니다. 홀연히 한 가인이 붉은 얼굴, 옥 같은 이에 곱게 화장하고, 멋진 옷을 차려 입고 간들간들 걸어 와서 얌전하게 앞으로 나와서 말했습니다. '첩은 눈 같이 흰 모래밭을 밟고, 거울 같이 맑은 바다를 마주 보며, 봄비로 목욕하여 때를 씻고, 맑은 바람을 상쾌하게 쐬면서 유유자적하는데, 이름은 장미라고 합니다. 왕의 훌륭하신 덕망을 듣고 향기로운 휘장 속에서 잠자리를 모시고자 하는데 왕께서는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하였는데 이 때의 장미는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이나 장미와 모란을 비교한 것으로, 장미가 이미 들여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는 한림별곡의 일부 가사를 소개한 내용 중에 <홍모란, 백모란, 정홍(丁紅)모란, 홍작약, 백작약, 정홍작약, 어류옥매(御榴玉梅), 황색 장미, 자색 장미, 지지(芷芝), 동백이 사이사이 꽃 핀 광경은 어떠한가?>라는 대목이 있어서 장미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수없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양화소록》에서도 가우(佳友)라 하여 화목 9품계 중에서 5등에 넣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서양장미는 8·15광복 후에 유럽·미국 등지로부터 우량종을 도입한 것으로 지금은 다양한 원예종을 재배하고 있다.